온화함엔 행운을, 악의엔 불운을 비추는 거울, 고양이
작지만 다부진 체격, 게으름, 날렵함, 반짝이다가도 게슴츠레한 눈,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 일본의 마네키네코, 행운과 불행. 고양이는 이처럼 다양하고 대조적인 개념을 동시에 지닌 신비로운 존재입니다. 반려견이 인간 생활사에 풍덩 담긴 묵은지라면 고양이는 잘 익은 김치와 겉절이 같아요. 만 년 전부터 인간과 함께해오면서도 지금껏 야생성을 간직한 고양이는 우리에게 무엇을 전해주기 위해 인류의 동반자가 된 것일까요?
고양이의 다양한 모습
1
실내냥이
애교쟁이 실내냥이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교감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여전히 독립적인 성격을 유지하며 자신만의 영역을 지킵니다.
2
길냥이
독립성을 유지하는 길냥이는 인간과 적절한 거리를 두며 야생의 본능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길들여진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습니다.
고양이의 정체성
나를 잃지 않고 남에게 물드는 현명함이 고양이의 정체성입니다. 자신을 지키는 힘은 세상을 사는 원동력이자 남을 돕는 유용한 그릇이 됩니다.
고양이의 역사적 기원
1
아프리카 들고양이
고양이의 조상인 아프리카 들고양이(Felis lybica)는 인류와 함께하면서 집고양이(Felis catus)로 진화했습니다.
2
농경 사회의 시작
만 년 전 농경이 태동한 마을에 쥐를 잡기 위해 고양이가 먼저 다가왔고, 스스로 길들여졌습니다.
3
현대의 고양이
만년이 흐른 지금도 고양이는 적절한 거리 두기로 야생성을 간직하고 있으며, 인간과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집트에서의 고양이 숭배
파라오의 수호자
고양이는 이집트에서 파라오를 보호하는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식량창고 수호자
쥐로부터 식량창고를 지켜낸 공을 높이 인정받아 서민의 식량을 지키는 신으로 칭송되었습니다.
다산의 상징
고양이는 행운, 정의, 다산의 상징이 되어 수많은 미라, 조각상, 벽화로 재탄생했습니다.
감사의 대상
이집트인들은 고양이가 가져온 이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사해했습니다.
중세 유럽의 고양이 박해
농업 사회의 조력자
유럽까지 퍼진 고양이들은 농업 사회에 큰 도움을 주며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마녀사냥의 희생양
13세기부터 중세 유럽에서는 과학을 반기독교적 사상으로 믿고, 무지가 낳은 미신은 고양이를 악마로 규정했습니다.
흑사병의 창궐
고양이 숙청 이후, 쥐벼룩에 기생하는 세균으로부터 발생한 흑사병은 14세기부터 최소 3천만 명의 목숨을 앗았습니다.
우연의 일치?
흑사병의 원인은 여전히 논란 중이나, 당대에 만연했던 사회 풍조에 대해 한 번쯤은 인과관계를 생각해 볼 일입니다.
비뚤어진 시각의 결과
중세 유럽인들은 고양이의 유입을 비뚤어진 사회적 시각으로 해석했고, 그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이집트와 유럽을 비춘 고양이 거울
고양이라는 거울은 똑같은데, 이를 바라본 이집트인과 유럽인의 시각차는 꽤 컸어요. 두 집단의 관점은 어디서 벌어진 것일까요?
고양이와 인간의 공생 관계
고양이는 먼저 인간에게 다가왔고 공생(共生)했습니다. 서로에게 식량을 주었고 터전을 나누며 존엄을 인정해왔습니다. 이러한 관계는 상호 존중을 기반으로 하며,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현명한 거리두기를 통해 유지됩니다.

상호 존중
서로의 존엄을 인정하는 관계
터전 나누기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영역 존중
식량 교환
쥐 퇴치와 먹이 제공의 호혜적 관계
자발적 접근
고양이가 먼저 인간에게 다가옴
고양이, 인간 정신의 거울
왜곡된 관점의 희생자
세상에 대한 인간의 관점이 왜곡되고 정신이 황폐해질 때, 고양이는 악행의 피해자가 되어 인간이 지닌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줍니다.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
소설 '검은 고양이'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고양이를 아꼈으나, 알콜 중독이 심해질수록 파괴된 자아상은 학대로 대변되었습니다.
현대 사회의 동물 학대
최근 기사를 검색하면 동물 학대의 동네북은 늘 고양이입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정신 상태를 반영하는 거울과 같습니다.
고양이가 전하는 메시지
고양이를 보면 드는 생각
가끔은 안쓰러움에 이런 생각을 합니다. 고양이야 도망가라고. 왜 이렇게 당하면서 사람 곁에 있냐고.
감사의 마음
그럴 때 이 작은 생명체는 느긋한 눈빛으로 이런 대답을 하는 것만 같습니다.
"고마우니까 곁에 남는 것"이라고…
사람이 사람의 아름다움의 발견할 때까지
"인간의 모습을 비춰주는 존재로 항상 함께하고 싶다고"
이 작은 생명체는 온화함에는 행운을, 악의에는 불운을 비추는 거울이 아닐까요? 주는 만큼 돌아옵니다. 열쇠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온화함엔 행운을, 악의엔 불운을 비추는 거울, 고양이
고양이 하면 뭐가 떠오르는가? 작지만 다부진 체격, 게으름, 날렵함, 반짝이다가도 게슴츠레한 눈,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 일본의 마네키네코, 행운과 불행. 이처럼 다양하고 대조적인 개념이 동시에 떠오르는 대상이 있나 싶다. 개뿐만 아니라 고양이는 자연스럽게 사람과 함께 지낸 반려동물이다. 그러나 그 역사는 사뭇 개와 다르다. 반려견이 인간 생활사에 풍덩 담긴 묵은지라면 고양이는 잘 익은 김치와 겉절이다. 열 반려견 안 부러운 애교쟁이 “실내냥이”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는 “길냥이”까지 사는 모양이 다양하다. 고양이는 만 년 전 농경이 태동한 마을에 쥐를 잡기 위해 먼저 왔고 스스로 길들여졌다고 한다. 그러나 만년이 흐른 지금, 그들은 적절한 거리 두기로 야생성을 간직하고 있다. 나를 잃지 않고 남에게 물든 이 현명함이 고양이가 지닌 정체성이 아닐까 한다.
나 자신을 지키는 힘은 세상을 사는 원동력이다. 또한, 남을 돕는 유용한 그릇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그릇은 거울과도 같아서 나와 남을 동시에 비춘다. 고양이의 조상, 아프리카 들고양이(Felis lybica)는 인류와 함께하면서 집고양이(Felis catus)가 되었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쥐로부터 식량창고를 지켜낸 공을 높이 인정받아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고양이는 파라오를 보호하고 서민의 식량을 지키는 신으로 칭송되었고 행운, 정의, 다산의 상징이 되어 수많은 미라, 조각상, 벽화로 재탄생했다. 이집트인들은 고양이가 가져온 이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사해했다.
세월이 흘러 유럽까지 퍼진 고양이들은 농업 사회에 큰 도움을 주며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이어갔다. 그러나 13세기부터 균열이 생겼다. 중세 유럽에서는 과학을 반기독교적 사상으로 믿고 지식을 탐구하는 사람들을 마녀로 몰았다. 무지가 낳은 미신은 고양이를 악마로 규정했고 오랜 기간 마녀사냥과 동시에 고양이 숙청이 자행됐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쥐벼룩에 기생하는 세균으로부터 발생한 흑사병은 14세기부터 발생 10년 동안 최소 3천만 명의 목숨을 앗았고 18세기까지 창궐했다. 원인은 여전히 논란 중이나, 당대에 만연했던 사회 풍조에 대해 한 번쯤은 인과관계를 생각해 볼 일이다. 중세 유럽인들은 고양이의 유입을 비뚤어진 사회적 시각으로 해석했고 되돌아온 부메랑은 처참했다.
고양이는 먼저 인간에게 다가왔고 공생(共生)했다. 서로에게 식량을 주었고 터전을 나누며 존엄을 인정해왔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인간의 관점이 왜곡되고 정신이 황폐해질 때, 고양이는 악행의 피해자가 되어 인간이 지닌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소설 검은 고양이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고양이를 아꼈다. 그러나 알콜 중독이 심해질수록 파괴된 자아상은 학대로 대변됐다. 이런 모습은 주변에서도 볼 수 있다. 최근 기사를 검색하면 동물 학대의 동네북은 늘 고양이다. 가끔은 생각한다. 고양이야 도망가라고. 왜 이렇게 당하면서 사람 곁에 있냐고. 그럴 때 이 작은 생명체는 느긋한 눈빛으로 이런 대답을 하는 것만 같다. 고마우니까 곁에 남는 거라고. 그래서 사람이 사람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까지 거울이 되어 비춰주고 싶다고.